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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udy

나훔:니느웨심판

DailyQT 2007. 6. 26. 13:22
나훔 : 니느웨에 임할 심판 (1-3장)

Ⅰ. 나훔서의 배경

1. 나훔과 나훔서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1:1)
나훔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훔이라는 이름은 "느헤미야"의 줄인 말로서 "위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엘고스"사람이다. 그러나 "엘고스"가 어떤 도시인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엘고스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 그 곳은 니느웨에서 북쪽으로 24마일 떨어진 성읍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나훔의 무덤이 앗수르에 있는 엘고스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2) 벌게이트 성경을 번역한 제롬은 이 곳은 갈릴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고 말한다. 그는 가버나움(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이 나훔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이 주장이 옳은 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이 있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

3) 어떤 사람은 이 곳이 유다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선지자 나훔은 갈릴리에서 태어나서 유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가 산헤립의 침입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을 보면(1:9-13), 나훔의 예언 사역의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11)에 언급된 "한 사람"은 히스기야 왕 14년에 유다를 침략했던 앗수르 왕 산헤립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나훔과 이사야는 같은 시대 사람이며, 나훔서와 이사야서에는 병행귀절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나 1:8-9과 사 8:8,10,23, 나 2:10과 사 24:1, 나 2:10과 사 21:3, 나 1:15과 사 52:7 등을 참고하라!). 나훔서는 세련된 서정시로 쓰여져 있다. 이 책의 문체가 모든 예언서 중에서 가장 정열적이라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훔이 힘차고 생생한 표현들은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는 문체나 사상 면에서 매우 탁월한 시인이었다. 그는 여러 속국들이 앗수르에 대해 가진 피맺힌 원한과, 그들이 니느웨 성의 함락을 보고 기뻐하는 장면, 그리고 앗수르의 잔인한 역사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사건들을 탁월한 시적 재능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훔의 메시지는 니느웨의 멸망에 집중되고 獵? 요나는 이미 150년 전에 니느웨에 대해서 예언을 한 바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나훔서는 요나서의 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니느웨는 수백년 동안 서부 아시아에서 위협적인 존재였다. 이 성읍은 티그리스 강변에 있는 거대한 도시였다. 이 성읍은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원정군들을 통해 부유해진 상업의 중심지였다. 니느웨는 요나 시대에 한 차례 경고를 받았지만, 그드른 회개함으로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성읍은 그 후에 계속해서 잔인한 행동과 죄악을 계속했으며, 이로 인해 최후의 멸망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경 외의 연대기에 의하면, 이 성읍 주전 612년에 메대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나훔이 예언했던 시대는 앗수르가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또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등 국제적으로 가장 횡포가 심했던 때였다.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 볼 때에 나훔은 앗수르가 애굽의 테베 성을 멸망시킨 주전 663년에서 바벨론에 의해 니느웨가 멸망된 주전 612년 사이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2. 나훔서의 메시지

나훔이 이 예언을 하게 된 원인은 산헤립의 침략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훔은 백성들 앞에선 무자비한 침략자와, 그들을 심판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조적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특성에 대한 나훔의 장엄한 묘사는 매우 탁월하다. 때로 성경은 하나님을 투기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불타오르는 하나님의 열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열정은 변질된 정의를 바로 잡겠다는 강열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훔은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 10 지파를 사로 잡아가고(주전 722년), 그 후에 유다의 튼튼한 성읍들을 함락시킨 일을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질투는 자기 백성을 짓밟는 앗수르를 보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불타는 열정으로 반드시 자기 백성을 짓밟은 대적 앗수르에게 보복해 주실 것이다.

선지자 나훔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보복하신다고 세 번이나 선포한다. 지각이없는 민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학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훔은 하나님의 보복에 대해서 엄숙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은 일에 발끈하여 쉽게 진노하시는 분은 아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죄 있는 자와 죄 없는 자를 동일하게 다루시지는 않는다. 인간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자연 현상, 즉 회오리 바람과 폭풍에 나타나 있다. 구름이 넓다 해도 하나님은 사람이 땅 위를 걷듯이 그 위를 밟고 걸으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나훔의 묘사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구짖으시면 강과바다도 모두 말라버린다. 하나님은 홍해와 요단 강을 마르게 하심으로 이 권능을 나타내셨으며, 예수께서도 갈릴리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풍요롭고 비옥한 바산에 가뭄을 주어 쇠약하게 만드셨다. 포도원으로 유명한 갈멜도, 무성한 삼림으로 유명한 레바논도 하나님은 원하시면 황무지로 만드실 수 있다. 모든 자연과 인간들은 자연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현시를 인식하고, 또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작은 산, 산, 땅, 그리고 세계와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 (나 1:6)의 질문에는 이에 대한 대답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화산을 통제하시고, 바위를 깨뜨리신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은 무한하며, 하나님의 거룩하고 완전한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진노를 잠시라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즉시 자기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나훔서는 나라가 거짓과 힘 위에 세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여호와는 어느 나라든지 불의와 폭력, 그리고 우상 숭배를 하면 반드시 심판하신다. 니느웨의 멸망은 그들의 잔인하고 무례한 행동에 대한 결과였다. 나훔서는 그들의 멸망이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인류는 끝없이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물어왔다. 왜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지 않는가?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 갔는가? 하나님은 피 압제자인 이스라엘을 향해서 "내가 니느웨를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고 하셨다(요나서).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압제자인 앗수르를 향해서는 "너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나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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